잊혀지는 청춘, 초로기 치매의 그림자
- 뉴스B
- 1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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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사회의 한복판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나이에 기억을 잃고 일상이 무너지는 이들이 있다. 바로 65세 미만의 젊은 연령층에서 발병하는 ‘초로기 치매(Early-Onset Dementia)’ 환자들이다. 통계에 따르면 국내 초로기 치매 환자는 약 7만 7천 명, 전체 치매 환자의 약 7.7%를 차지한다. 하지만 ‘노인의 병’으로만 여겨지는 고정관념 속에, 이들의 고통은 충분히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초로기 치매의 무서운 점은 증상이 교묘하게 일상 속에 숨어든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노년기 치매처럼 단순히 기억을 잃는 수준이 아닌,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타나곤 한다. 예를 들어, 길을 걷다 갑자기 방향 감각을 잃거나, 직장에서 늘 하던 업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말문이 막혀버리는 경험을 한다. 시야가 흐려지거나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못하는 등의 단순해 보이는 문제조차 뇌의 퇴행성 변화로 인한 것일 수 있다.
또한 전두엽 기능 저하에 따른 인격 변화도 초로기 치매에서 자주 나타난다. 갑작스러운 냉소, 무표정, 충동적인 언행 등은 흔히 성격 탓으로 치부되기 쉬우나, 사실 이는 뇌 전두엽의 기능이 손상되며 나타나는 신경학적 증상이다. 가족이나 동료는 처음엔 이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관계의 소원함을 느끼기 쉬우며, 이 과정은 환자에게 더 큰 심리적 고통을 안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진단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아직 생산 활동을 하는 연령대이기에 업무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으로 오인되기 쉽고,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기에 정확한 진단을 통해 원인을 밝혀내면 일부 환자에겐 회복의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비타민 B12 결핍, 엽산 부족, 우울증, 정상압수두증과 같은 질환은 초로기 치매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지만 치료를 통해 회복할 수 있다. 그렇기에 조기 검진과 감별 진단은 결정적이다.
만약 알츠하이머병이나 루이체 치매처럼 비가역적인 원인이라면, 치료는 증상 완화와 진행 속도 억제에 초점을 맞춘다. 아세틸콜린분해효소억제제와 같은 약물이 사용되며, 인지 기능을 일정 부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약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지재활치료, 가족과의 지지 체계 구축, 정서적 돌봄 등이 병행돼야 한다.
초로기 치매는 단순한 ‘기억력 문제’가 아닌, 청년기와 중년기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 전체를 흔드는 위기다. 직업을 잃고, 사회적 관계가 무너지며, 경제적 기반이 붕괴되는 일이 한꺼번에 닥칠 수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기 발견과 정확한 진단, 그리고 사회적 인식 개선이다. 아직 젊다는 이유만으로 치매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되며, 이상 행동이나 인지 기능 저하가 느껴진다면 전문의의 진단을 받는 것이 최우선이다.
또한 정부와 지자체는 초로기 치매 환자와 가족을 위한 지원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단순히 병원 진료를 넘어, 직장 내 이해, 경제적 보조, 재활 프로그램, 심리 상담까지 다방면의 지원이 필요한 대상이다. 청춘이 기억 속에 묻히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섬세한 관심과 제도가 절실한 시점이다.
초로기 치매는 ‘노인의 병’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 바로, 기억의 끈을 붙들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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